지체장애인 1급, 국민기초생활보장법 수급권자, 어려운 가정환경에도 곽영숙(59세, 서울론볼연맹)은 희망을 잃지 않고 주어진 하루를 감사하게 산다. 전국장애인체육대회 론볼 1위, 2011년 세계선수권대회 1위에 빛나는 곽영숙. 오늘도 그녀는 아침 일찍 일어나 인천장애인아시안게임을 위해 기쁜 마음으로 훈련장을 향한다.

1995년 평범한 주부였던 곽영숙에게 도저히 감당 할 수 없을 것 같았던 시련이 찾아왔다. 아파트 4층 베란다에서 여느 때와 같이 청소를 하던 중 낙상 사고를 당해 하반신마비 장애인이 됐다. 장애로 인해 절망적인 삶을 살아야하는 그녀의 눈에는 당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고 했다. 병원에서 5년 동안 치료를 받는 기간이 그녀에겐 너무도 큰 시련이었다.

“장애를 갖게 된 것 자체로도 정말 힘들었지만 그 후에 제가 견뎌야할 외로움이 더욱 무거웠습니다. 장애인이 된지 3년 안에 남편과 이혼했고 아이들과 헤어져 혼자 지내게 되었거든요”

절망의 터널을 지나던 어느 날 그녀에게 희망의 빛이 보이기 시작했다. 재활병원에서 치료를 받던 중 친구를 통해 론볼을 알게 된 것. 그때가 2000년 그녀의 나이 45세였다.

“재활운동으로 론볼을 시작하고 나서 제가 갈 곳이 있다는 것이 너무 좋았어요. 또 제각기 아픔과 사연이 있는 장애인 친구들과 어울리는 생활이 정말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론볼을 만나면서 제 삶을 되찾은 것 같았습니다. 그렇게 론볼은 저에게 살아가는 이유를 선물했습니다”

론볼은 잔디 또는 인조잔디경기장에서 규정된 수의 볼(약 1.5.kg)을 ‘잭’이라 불리는 작은 볼에 가까이 굴리는 경기다. 영국, 호주, 뉴질랜드, 캐나다 등 주로 영연방 국가에서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1988년 장애인올림픽을 계기로 도입되었다. 비교적 육체활동이 적어 느긋하게 즐길 수도 있기에 장애인 재활스포츠로도 각광을 받았다. 대한장애인론볼연맹(전 한국론볼경기연맹)을 주축으로 지역동호회가 결성되면서 보급이 확대됐고 경기의 종류는 남녀 단식, 복식, 3인전, 4인전 등 다양하다.

곽영숙은 장애인이 된지 2년 론볼을 시작한지 1년 만에 국가대표가 됐다. 장애를 갖기 전에는 절대로 알 수 없었던 그녀의 재능과 능력이 드러난 것이다. 국가대표 된 그녀는 2002년 부산장애인AG 은메달, 2007년 세계선수권 단식 동메달, 2011년 세계선수권 단식 금메달을 따냈다. 이외에도 국내 대회에서 딴 수많은 메달들이 그녀의 집에 보관되어 있다. 곽영숙에게 이번 인천장애인AG의 목표는 단연 단?복식 모두 금메달이다.

곽영숙은 이번 대회를 위해 매일같이 진액을 쏟는 것처럼 열심히 훈련한다. 하루 훈련시간은 오전 2시간, 오후 4시간 총 6시간이다.

“운동을 할 때 너무 행복하지만 그래도 체력적으로 지칠 때는 너무 힘들어요. 제 나이가 벌써 59살이니 말이죠. 그래도 하루하루 최선을 다하면서 제가 이 경기를 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며 삽니다”

메달을 따면 가장 먼저 누구에게 자랑하고 싶냐는 질문에 곽영숙은 잠시 머뭇하더니 말을 이어갔다.

“지금은 헤어져 있지만 남편에게 메달을 보여주고 싶습니다. 용기를 내어 새 삶에 도전했고 이렇게 잘 살고 있는 모습을 보면 저도 그분도 기쁠 것 같아서요. 그리고 지금도 늘 성실하게 살펴주시는 이성진 감독님과 동료 선수들과도 기쁨을 나누고 싶습니다. 이 모두가 제겐 너무 소중한 인연들입니다”

곽영숙의 소망은 대한민국 장애인체육이 더욱 발전하는 것이다.

“장애인체육도 연금제도나 기타 여러 복지가 더 좋아졌으면 합니다. 어려움 속에서 운동하는 선수들이 많은데 충분한 보상을 받지 못해 실망하는 경우가 많아요. 경제적으로 힘겨워서 포기하는 이들도 너무 많고요. 장애인들이 마음껏 도전할 수 있는 사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올해나이 59세인 그녀는 도전을 멈추지 않는다. 장애인이 되고 나서 자신의 삶을 찾고 오히려 행복을 경험한다는 곽영숙 선수. 용기와 도전으로 시련을 극복한 그녀는 이제 자신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그 금메달을 위해 오늘도 성실히 훈련에 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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