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규일(왼쪽 세번째) 부총재보가 12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 기자실에서 2018년 하반기 경제전망 기자설명회를 하고 있다. 한은은 올해 경제성장률을 2.9%로 2019년은 2.8%로 전망했다. /뉴시스

지난 3월 한미 기준금리가 역전된데 이어 이대로 가면 경제성장률마저 역대 세 번째로 역전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올해 미국의 2분기 경제성장률은 소비 회복에 힘입어 4.1%를 기록하며 4년 만에 최고치를 나타냈다. 미국경제가 과열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마저 나온다. 한국경제와는 사뭇 다른 모양새다. 반면 한국은 건설 및 설비투자의 감소와 민간소비 위축으로 0%대로 주저앉았다.

한국과 미국의 최근 경제상황은 정반대로 움직이고 있다. 미국은 트럼프 정부가 들어선 이후 기업 규제 개선과 과감한 감세정책 등으로 기업환경 개선에 주력했다. 그 결과 노동시장의 사정이 좋아졌고 고용여건이 개선됐다. 이런 영향으로 노동자의 소득이 늘어 내수시장이 탄력을 받고 있다.

그러나 한국은 '최저임금 인상'을 놓고 청와대를 비롯한 여당과 야당이 대립하고 소상공인과 노동자가 갈등을 빚고 있다. 고용여건이 나빠지고 자영업자들의 폐업이 줄을 잇고 있는데도 정부와 정치권은 네 탓 공방만 벌이고 있는 것이다.

미 상무부에 따르면 지난 27일(현지시간) 발표한 2분기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잠정치는 연율 4.1%였다. 미국은 경제성장률을 연율로 환산해 발표하기 때문에 이를 역산하면 2분기 성장률은 1%를 약간 웃도는 것으로 추정이 가능하다. 미국의 이런 2분기 성장률은 국제통화기금(IMF)이 발표한 ‘세계경제 전망 수정보고서’에서 예측한 올해 세계경제 성장률(3.9%)보다 높고 선진국 평균(2.4%)도 훌쩍 뛰어넘는 높은 수치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미국 경제의 이 같은 높은 성장률에 대해 개인소비와 연방·주정부 지출 확대가 영향을 주었다고 설명한다.

이에 반해 한국은행이 발표한 한국의 2분기 실질 GDP 성장률은 지난 분기보다 겨우 0.7% 성장하는 그쳐 미국보다 낮았다. 지난 1분기 성장률 1.0%보다도 둔화된 수준이다. 이를 연율로 계산하면 2.8% 수준의 성장률이 예상된다.

이번 2분기 잠정치만 놓고 보면 올해 미국의 성장률이 한국을 넘어설 수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는 2차 오일쇼크 때인 1980년과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때인 1988년에 이어 세 번째로 한·미 간 성장률 역전현상이 발생할지 주목되는 대목이다.

미국 경제성장률이 개선된 이유는 소비지출 증가 덕분이다. 2분기 소비지출은 4.0% 증가해 1분기(0.5%)보다 개선 폭이 커졌다. 반면 한국은 경기 성장세를 뒷받침하던 민간소비가 1분기보다 0.3% 늘어나는데 그쳐 2016년 4분기(0.3%) 이후 6분기 만에 최저치로 쪼그라들었다.

기업 설비투자도 극명한 차이가 보인다. 미국은 1분기 8.5% 급증한 뒤 2분기 3.9% 증가했다. 한국은 2분기 기계류와 운송장비 감소로 설비투자가 전분기보다 6.6% 급감했다. 설비투자는 지난 2016년 1분기(-7.1%) 이후 9분기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을 기록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미국은 오바마 행정부에서 추진됐던 해외기업의 자국 내 유치를 위한 노력이 트럼프 행정부에서도 계속되고 있는 중"이라며 "규제개선, 감세를 포함한 전반적인 기업환경의 개선을 통해 경제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진단했다.

성 교수는 "노동시장 사정이 좋아져 고용여건도 개선되고 증가된 소득이 다시 내수 상황을 좋게 하는 선순환이 만들어 지고 있다"며 "최근에는 오히려 미국경제가 과열하는 것은 아닌지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올 정도"라고 지적했다.

한·미간 성장률 격차 속에 국내 건설투자 위축은 특히 주목해야할 대목이다. 2분기 한국에서는 주거용 건물건설과 토목건설이 줄어 건설투자가 1.3% 감소했다. 건설투자가 감소세를 보인 것은 지난해 4분기 이후 두 번째다. 문재인정부 들어 건설투자는 두드러지게 감소했다.

실제로 건설투자는 2016년에는 1분기 5.6%, 2분기 3.2%, 3분기 2.2%, 4분기 1.0%를 기록한 뒤 2017년 1분기 4.2%로 급증했다. 문 대통령 취임 이후인 지난해 3분기 건설투자는 1.1%, 4분기 -2.3%, 올해 1분기 1.8%로 새 정부 출범 후 1%대를 넘겨본 적이 없다.

건설투자를 확대하면 성장률이 회복될 것이라는 주장도 제기됐다. 통계청에 따르면 올해 취업자 증가폭은 1월 33만4000명으로 호조를 보였을 뿐 2월부터 3개월 연속 10만명대를 기록한 뒤 5월에는 7만2000명까지 추락했다. 6월에 반등을 노렸지만 여전히 10만명대에 그쳤다.

6월 기준 종사지위별로 보면 상용직 근로자는 36만5000명 증가했다. 그런데 임시근로자는 13만명, 일용직 근로자는 11만7000명이 감소했다.

빈현준 통계청 고용동향과장은 "일용직 취업자 수 감소는 건설업 경기둔화에 가장 많은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며 "임시직의 경우 경기가 좋지 않을 때 고용이 불안정해진다"고 설명했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한국이 성장률을 높이려면 미국 정책을 따라하면 된다"며 "트럼프 대통령은 해외로 나간 기업들이 유턴해서 자국으로 돌아오게 하고 있다“며 ”인프라 투자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주 실장은 "김동연 부총리가 추진하고 있는 혁신성장에 기대를 걸고 있다"며 "하반기에 혹시 경제지표가 더 나빠지면 정부가 추경 카드를 만질 텐데 그 때 SOC 쪽에 투자한다면 경제성장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박진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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