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시사만화의 큰 별이 졌다.

네 칸 시사만화의 대명사인 '고바우 영감'의 김성환(87) 화백이 노환으로 별세했다.

고인은 1948년 네 칸 만화 '멍텅구리'를 연합신문에 기고했다가 언론사의 요청으로 1949년 정식 데뷔했다. 이후 ‘화랑’, ‘주간만화뉴스’ 등에 단편 만화를 게재하며 활동했다.

이듬해 6·25 동란이 발발하자 종군화가로 일했다. 국방부 정훈국 미술대에서 국방부가 발행한 신문, 삐라, 포스터 등에 글을 쓰고 그림을 그렸다.

김 화백의 대표작인 '고바우 영감'은 1950년 12월 '만화신보'에 첫선을 보였다. 1955년 2월1일 동아일보에 연재를 시작했다.

'고바우 영감'은 1980년 9월11일부터는 조선일보에 연재했다. 1992년부터는 문화일보로 옮겼다. 2000년 9월29일 45년간 총 1만4139회 연재라는 대기록을 세웠다. 2001년 한국 기네스에 등재됐고 2013년 등록문화재 538-2호가 됐다.

김 화백은 '고바우 영감'에서 신랄한 풍자로 정권의 탄압을 받기도 했다. 1958년 이승만 독재정권 당시 경무대(현 청와대)의 권위를 꼬집은 '경무대 똥통 사건'으로, 시사만화 최초 필화사건의 주인공이 되기도 했다. 김 화백은 이 사건으로 당시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이와 함께 김 화백은 학원만화 '꺼꾸리군 장다리군'을 '학원'에 장기 연재했고, '소케트군'을 소년동아일보에 3550회 연재하기도 했다.

동아대상(1973), 소파상(1974), 스웨덴 국제우편전 대금상(1986), 서울언론인클럽 신문만화상(1988), 언론학회 언론상(1990), 보관문화훈장(2002), 레드어워드 만화 부분(2013) 등을 받았다.

1998년 세계만화백과사전에 등재됐다. 2001부터 김 화백이 전액 출연한 '고바우 만화상'이 제정돼 지금도 만화계에 공로가 있는 만화작가에게 주고 있다.

작품집 '김성환 전집 고바우영감'과 '고바우현대사', 수필집 '고바우 방랑기' '고바우와 함께 산 반생' 등을 펴냈다.

시사만화가로서 은퇴한 뒤에도 동양화, 풍속화 등 창작작업을 지속했다. 한국시사만화가회 명예회장, 한국만화가협회 고문 등을 역임했다.

/박남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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