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그룹이 추진하고 있는 지배구조 개편안이 오는 29일 열리는 현대모비스 임시 주주총회에서 부결될 것이라는 전망이 점차 높아지고 있다.

행동주의 펀드 '엘리엇'이 이번 개편안이 타당하지 않고 불공정하다며 반대표 몰이를 하는 가운데 국내외 주요 의결권 자문사 5곳도 모두 반대 의견을 권고했다. 특히 이번 개편안 통과의 '캐스팅 보트'를 쥐고 있는 국민연금이 의결권 자문 계약을 맺은 2곳으로부터 반대 의견을 내라는 권유받음에 따라 찬성 결정을 내리기는 쉽지 않다는 분석이다.



20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국민연금은 세계적인 의결권 자문사로 꼽히는 ISS와 국내 대표 의결권 자문사 기업지배구조원 2곳과 의결권 자문 계약을 맺었다.

ISS(15일)와 기업지배구조원(17일) 두 곳 모두 오는 29일 열리는 현대모비스와 현대글로비스의 주주총회에서 이번 개편안에 대해 반대표를 던질 것을 권고했다.

여기에 서스틴베스트(9일), 글래스루이스(15일), 대신지배구조연구소(16일) 등까지 현대차 지배구조 개편안에 반대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는 등 국내외 주요 의결권 자문사 5곳이 모두 반대표를 행사하라고 의견을 냈다. 의결권 자문사의 의견을 주주들이 반드시 따라야 하는 의무는 없지만 기관과 외국인들의 의결권 행사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

국민연금의 개편안에 대한 입장이 중요한 것은 현대차 계열보다 외국인 지분율이 더 높은 상황에서 국민연금의 10% 가까운 지분율은 안건 통과를 위해 상당한 우군으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현대모비스 지분은 현대차 계열이 30.3%, 외국인 투자자가 48.6%, 국민연금이 9.8%, 국내 기관·개인이 8.7%를 보유했다.

합병안이 통과되려면 참석 주주의 3분의 2 이상이 찬성해야 한다. 주총 참석률을 80%로 가정하면 54%가 찬성표가 필요하고, 현대차 계열 30% 외에 추가로 24%의 찬성표를 확보해야 한다.

이런 가운데 국민연금은 지난 18일 내부 투자위원회를 열어 현대차그룹의 지배구조 개편안에 대한 의결권을 민간전문가로 구성된 의결권행사전문위원회에 맡겨 결정하기로 했다. 위원회는 이르면 오는 22일 회의를 열어 찬성·반대·중립·기권 중 입장을 정할 것으로 알려졌다.

익명을 요구한 의결권 자문사 관계자는 "국민연금이 현대모비스, 현대글로비스, 현대차, 기아차의 지분을 모두 보유함에 따라 주주 입장에서 어떻게 해야 유리할지 고차원의 방정식을 풀고 있을 것"이라며 "그러나 자문사들이 모두 현대차그룹 지배구조 개편안에 반대 의견을 낸 상황에서 국민연금이 찬성 결정을 내리기는 쉽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라고 분석했다.

이어 "트러스톤자산운용, 키움자산운용 등 국내 일부 기관투자가들이 찬성으로 가닥을 잡았으나 개편안 주총 통과가 현재 분위기에서는 부결될 가능성이 높다고 봐야 하지 않겠냐"라고 내다봤다.

이 밖에도 현대모비스의 지난 18일 현재 종가가 23만9000원으로 주식매수청구권 행사가 23만3429원에 임박한 가운데 국민연금, 자산운용사들은 주총에서 찬성표를 던지고 싶어도 주가가 그 밑으로 내려가게 되면 주식을 팔 수밖에 없어 찬성표를 내고 싶어도 행사할 수 없게 될 가능성도 남아 있다.

이번 현대차 지배구조 개편안이 부결되면 소액주주의 입장을 존중해 그룹 지배구조 개편이 좌절되는 첫 사례가 될 것으로 보인다.

앞서 현대차그룹이 순환출자를 모두 끊어내는 지배구조 개편안에 공정거래위원회는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또 현대차그룹 회장과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 부자가 1조원이 넘는 세금을 전액 납부하는 등 그룹이 나름 최선을 다했다는 평가가 나왔다.

의결권 자문사 관계자는 "현대차그룹의 장기적 발전을 고려해 개편안을 짠 것은 물론 오너 일가가 수조 원의 사재를 들이고 동시에 자사주 소각, 배당 확대 등 소액주주에 당근책을 제시했다고 하나 소액주주에 대한 고려가 충분치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며 "주총에서 부결 시 지배구조 개편을 준비하는 다른 대기업들에 소액주주 권리의 중요성에 대해 경종을 울리는 첫 사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다른 의결권 자문사 관계자는 "개편안이 불발된다면 과거처럼 소액주주에 대한 철저한 고려 없이 기업과 정부가 밀어붙이는 식으로 기업의 지배구조를 개편하는 시대는 끝났다는 이정표가 될 것"이라며 "기관투자가의 적극적 주주권 행사를 독려하는 내용의 스튜어드십코드 도입과 맞물려 한국 사회에서 주주권 개념에 대한 인식의 대전환이 이뤄지고 있다"라고 풀이했다. /박진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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