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여곡절 끝에 필리핀 앤젤레스 시티에 정착, 소소한 사기로 연명하는 '나'에게 인생을 바꿀 수 있는 제안이 찾아온다. 노인을 죽이면 35억을 준다는 말에 따라 '나'와 '대니'는 노인을 납치하는 데 성공한다.

'참다못한 내가 벌떡 일어나 애원하듯이 절규한다. 참 죄송하지만, 조금만 일찍 죽어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글쎄, 나를 두 달만 살려주면 일을 마무리하고 나서 스스로 죽겠다니까 그러네. 그러면 우리 계획에 차질이 생긴단 말입니다.'(64쪽)

작은 사기나 칠 뿐 손에 피를 묻힐 수 없다는 겁 많고 마음 약한 '대니' 때문에 노인을 죽이려는 계획은 번번이 실패한다. 사고사로 위장하기 위해 '야자수 밑에서 떨어지는 야자열매 맞게 하기' '피나투보 화산 호수에서 찢어진 보트에 태우기' '경비행기에서 떨어뜨리기' 등을 시도하지만, 노인은 그때마다 '빠레, 살라맛 뽀'(친구, 고맙네)를 연발하며 환호할 뿐이다.

"그런데 이 호수는 정말 인상적이야. 자네들 아니었으면 못 보고 죽을 뻔했네그려. 중세의 비극이라 불린다지, 이 피나투보 화산 폭발이…."(95쪽)

노인은 죽지 않고 두 사람에게 시종일관 '궁즉통'을 횡설수설한다. 궁하면 통한다고, 비우는 게 더 큰 성공이라 말한다. 작가의 휴머니즘적 메시지다.

"내 소설의 주인공은 착하거나 의로운 사람이 아니다. 애매모호하고 어리석어서 늘 제 발등을 찍거나 궁지에 몰려 쩔쩔맨다. 게다가 위악을 떨지언정 위선하지 않는다. (중략) 착한 소설은 쓰지 않겠다."(작가의 말)

'헤밍웨이 사랑법'에서 비폭력 대화의 중요성을 그린 한지수 작가의 두 번째 장편소설이자 2014 대한민국 스토리 공모대전 우수상 수상작이다. 필리핀에서 벌어진 실제 납치 사건을 토대로 만들었다. 276쪽, 1만2800원, 작가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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