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권위있는 문학상 아쿠타가와상을 받은 재일동포 여류작가 유미리가 사회적 소외계층인 노숙자의 세계를 들여다 봤다. 그동안 '가족이란 무엇인가'라는 주제에 천착해온 그다.

"쓰나미로 집이 쓸려나가거나, 집이 (방사능 누출의) '경계구역' 안이라 피난 생활을 해야만 하는 분들의 고통과, 돈을 벌기 위해 고향을 등지고 떠난 후 돌아갈 집이 사라진 노숙자분들의 고통이 내 속에서 서로 대립했다. 양쪽의 아픔을 잇는 이음매 같은 소설을 쓰고 싶었다."

'우에노 역 공원 출구'는 작가가 2년 만에 펴내는 신작으로 돈벌이를 위해 무작정 상경하는 사람들이 설레는 가슴으로 첫발을 내딛는 도쿄의 우에노역을 그렸다. 우에노 역은 일본의 고도성장기, 수많은 농어촌 출신들이 꿈을 안고 찾아와 주먹을 움켜쥐며 각오를 다졌던 장소다. 하지만 그 중 몇몇은 좌절을 겪고 노숙자로 전락했다.

작가는 186쪽 분량 작품을 쓰는데 12년이라는 긴 세월을 보냈다. 노숙자들의 내면에 닿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취재를 이어가던 와중에 2011년 3·11 동일본 대지진이 발생하고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가 재앙에 휩싸였다. 우에노 공원에는 후쿠시마를 비롯한 도호쿠 지방 출신 노숙자들이 많았다. 작가는 그들에게 취재 포커스를 맞췄다.

천황과 같은 해에 태어났지만 전혀 다른 삶을 살았던, "가난만한 죄악도 없다는 생각"으로 생의 무게를 견딘 인물이 화자다. 아들과 아내를 잃고 노숙자로 전락한, 죽은 자이기도 하다. 작가는 산 자와 죽은 자가 공존하는 땅, 우에노 공원에서 떠도는 한 사내의 혼을 통해 일본이라는 나라의 오늘과 내일을 그렸다.

'눈을 감으면 소리는 소리가 나던 위치를 잃고 날아가기 시작하며 소리가 들어오는 건지, 소리에 들어가는 건지 알 수 없게 되고 소리와 함께 흔적도 없이 하늘로 빨려드는 기분이었다. 그 소리(중략) 빠앙, 덜컹덜컹, 덜컹덜컹덜컹, 덜컹, 덜컹……두개골 안쪽에서 망치로 마구 두드리듯이……덜커덩, 덜커덩, 덜, 컹, 더……얼컹, 빠앙, 루우………….(89쪽)

작품에는 유난히 많은 '소리'가 넘친다. 사람의 목소리에서부터 빗소리, 잡음 등이다. '청각을 자극하는 독특한 소설'이라는 평을 듣는 이유다. 잦은 행갈이로 리듬감도 취했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고이치는 이제 곧 영구차에 실릴 것이다./ 영구차로 화장터까지 옮겨 갈 것이다./ 고이치는 이제 곧 뼈가 될 것이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81쪽)

작가는 "많은 사람들이 희망의 렌즈를 통해 6년 후의 도쿄올림픽을 바라보고 있는 지금, 이제야말로 저는 그 렌즈로는 초점이 맞지 않는 것들을 보고 맙니다. '감동'과 '열광' 그 너머에 있는 것들을"이라고 말했다. 8500원, 기파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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