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레드 카펫을 밟을 일 없는 평범한 사람이라도 한 번쯤 영화 속 주인공이 되는 것을 꿈꾼다. 하지만 영화의 주인공이 한 명인 것처럼, 사회의 모든 사람이 그때그때 주인공이 될 수는 없다. 마찬가지로 모두가 완벽한 육각형인간이 되는 것을 꿈꾸지만, 실제로 이를 이루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그렇다고 쉽게 단념할 수도 없다. 이 모순을 어떻게 극복해야 할까? 한 가지 방법은 "피할 수 없다면 즐기는 것"이다. 요즘 사람들은 불편한 현실을 게임처럼 희화화해 가볍게 웃어넘기며 절망을 긍정 에너지로 만들고 있다.

핵인싸 사진 놀이 (출처=배우 이민정 인스타그램)
핵인싸 사진 놀이 (출처=배우 이민정 인스타그램)

셀럽처럼 사진 찍고, 양치질 하는 나에게 찬사 보내고

사람들이 희화화 하는 육각형게임 가운데 가장 쉬운 방법은 의도적으로 현실을 과장하는 것이다. 요즘 '핵인싸' 사이에서 한 가지 사진 찍는 법이 유행하고 있다. 주인공이 자세를 잡으면 주변 사람들이 각자 스마트폰으로 주인공을 촬영하는 척하고, 그 전체 모습을 하나의 사진에 담는다. 마치 유명인이 레드 카펫에 등장했을 때 카메라 플래시 세례를 받는 것과 유사한 모습을 연출하는 것이다.

최근 유튜브 쇼츠 가운데 '아침 양치하면서 자존감을 높이는 방법'이라는 영상이 인기를 끌었다. 이 닦는 과정을 자세히 나누고 단계마다 자신의 성취를 감탄하며 자랑스러워 하는 영상이다. 고작 매일 아침 반복하는 양치질일 뿐인데, 영상 속 주인공은 마치 엄청난 성공을 이뤄낸 것처럼 과장해 자신을 칭찬한다. 모든 면에서 완벽을 추구하는 육각형인간을 놀리는 것처럼, 별것 아닌 일상 생활을 완벽하게 해내는 자신에게 찬사를 쏟아내는 것이다.

공주 드레스 입은 졸업사진 (출처=@han_ji_1_ 인스타그램)
공주 드레스 입은 졸업사진 (출처=@han_ji_1_ 인스타그램)

졸업식에서는 ‘영애 드레스’ 입고 공주처럼

평범한 현실을 과장해 대단한 인물이 된 것처럼 행동하는 것도 유행이다. 지난 2월 중·고등학교 여학생들 사이에서는 '공주 드레스'를 입고 졸업식 사진을 찍는 것이 인기였다. '로맨스 판타지' 장르의 웹소설과 웹툰이 인기를 끌면서, 콘텐츠 속 주인공을 따라 하는 것이다.

2023년 네이버웹소설에서 통합 랭킹 상위 작품 15개 중 6개가, 카카오웹툰에서 인기 순위 10위권 내 4개 작품이 로맨스 판타지 장르에 속했다. 중세 시대를 배경으로 한 로맨스 판타지 작품이 많아 주인공들은 대체로 귀족이나 왕족으로 등장한다. 

높은 신분의 여자 주인공을 향해 하인이 대개 '영애'라고 부르기 때문에 여자 주인공이 입는 의상은 종종 '영애 컨셉 드레스'라 불린다. 영애 드레스를 입는다고 해서 실제로 공주가 되는 것은 아니지만, 학생들은 잠시라도 공주가 된 기분을 만끽하며 재미있어 한다.

아이돌 놀이하다가 진짜 아이돌 된 ‘걸걸오렌씨’

때로는 완벽한 육각형인간인 척 과장하는 행동이 예상치 못한 반향을 가져오기도 한다. 아이돌인 척하다가 진짜 아이돌이 된 '걸걸오렌씨' 사연이 대표적이다. 2023년 7월 데뷔한 3인조 걸그룹 '걸걸오렌씨'는 뉴스에서 이름조차 찾아보기 힘들다. 음원 사이트에서도 음원을 찾을 수 없다. 사실 ’걸걸오렌씨’는 제작사를 통해 정식 데뷔한 아이돌이 아니다. 평범한 초등학생들이 아이돌 놀이 하듯 인스타그램에 영상을 올린 것이 데뷔였다.

재미있는 밈 정도로 끝날 수 있었지만 인스타그램에 사진과 릴스를 꾸준히 업로드한 덕분에 제법 아이돌 흉내도 낼 수 있게 됐다. 인스타그램 팔로워가 20만 명에 육박하며, '오아'라는 팬덤까지 생기기도 했다. 심지어 일반인 아저씨 그룹 '걸걸아저씨' 등 이들을 패러디한 재치있는 그룹들도 연이어 등장했다. 육각형인간에 대한 선망은 사회 곳곳에서 재미있는 놀이 문화로 나타나고 있다.

최고심 작가의 무한 긍정 캐릭터 (출처=작가 최고심 인스타그램)
최고심 작가의 무한 긍정 캐릭터 (출처=작가 최고심 인스타그램)

무한 긍정 말투로 스스로 성공 다짐

"나는 반드시 성공한다!"를 외치는 무한 긍정 말투도 육각형인간이 되어야 한다는 열망을 다짐하는 방식이다. 2023년 틱톡에서 '#luckygirlsyndrome 해시태그가 달린 영상은 1억 회가 넘는 조회 수를 기록했다. '럭키걸 신드롬'은 구체적인 근거가 없어도 내가 얼마나 운 좋은 사람인지 반복해서 외치면 좋은 일이 생긴다고 믿는 일종의 자기 설득 열풍으로 풀이된다.

우리나라에서도 좋아하는 캐릭터를 통해 긍정 확언(positive affirmation)을 일상 속에서 외치는 움직임이 관찰된다. 최고심 작가의 캐릭터들은 대충 그린 것 같은 그림체에 "나는 성공한다"라거나 "오케이! 해보자고!" 같은 파이팅 넘치는 말풍선이 매력적이다.

넷마블에서 서비스하는 게임 '야채부라리'에 등장하는 캐릭터 '쿵야'는 요즘 Z세대가 좋아하는 '맑눈광(맑은 눈의 광인)'의 모습을 가지고 있다. "노력 없이 성과를 이루고 싶다"는 대사처럼 사람들의 마음속 바람을 진지한 표정으로 전달해 사랑받고 있다. 별로 힘도 세 보이지 않고, 특별히 예쁘지도 않은 캐릭터들이 전달하는 '무한 긍정 말투'를 보고 있으면, 왠지 나도 성공할 수 있으리란 에너지가 전해져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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