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살고 있는 전모(70) 할머니는 지난해 12월12일 오전 금융감독원(금감원) 직원이라는 사람으로부터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은행 계좌가 노출돼 범죄에 도용될 수 있다며 계좌에 있는 돈을 모두 인출해 놓으면 금감원 직원이 직접 집으로 찾아가 안전한 계좌에 다시 입금 시켜주겠다는 내용이었다.

전화금융사기(보이스피싱)라는 사실을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던 전씨는 곧장 은행으로 달려가 계좌에 남아있던 현금 6300만원을 찾아 집으로 돌아왔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말끔한 정장차림의 젊은 남성들이 전씨의 집을 방문했다. 전씨는 본인 사진과 금감원의 로고, 직함 등을 새긴 가짜 신분증을 휴대하고 있던 이들을 금감원 직원이라 철석같이 믿었다.

이들은 전씨가 아무런 의심 없이 현금 6300만원을 건네자 "안전한 은행계좌 카드"라며 가짜 현금카드를 내밀고 유유히 사라졌다.

이날 오후 병원에서 간병일을 하던 전씨는 보이스피싱 조직에게 사기를 당했다는 사실을 알고 곧장 인근 지구대로 달려가 신고했다.

하지만 이들의 범행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지구대에서 낙담하며 자초지종을 설명하던 전씨의 휴대전화가 또 다시 울렸다.

수상한 낌새를 직감한 경찰은 전씨에게 "은행에서 돈을 찾고 있으니 조금 있다 다시 전화를 걸어달라"고 요청한 뒤 수화기 너머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아니나 다를까. 오전에 전씨에게 전화를 걸었던 보이스피싱 조직이었다.

전씨와 함께 곧장 인근 은행으로 출동한 경찰은 은행 창구 직원에게 수화기 너머로 '3000만원이 인출됐다'는 소리가 들리도록 부탁했다.

은행 직원의 목소리를 들은 이들은 "금감원 직원이 직접 집을 찾아가겠다"는 말을 남기고 전화를 끊었다.

이들의 범행은 결국 전씨의 집에서 잠복하고 있던 경찰에게 검거되면서 막을 내렸다.

지난해 11월20일부터 한 달여간 이들의 사기 행각에 피해를 당한 사람은 전씨를 포함해 모두 6명, 피해금액은 2억5600만원에 달한다.

서울 성동경찰서는 국내 총책 공익근무요원 안모(27)씨와 모집책 김모(21)씨 등 8명을 사기 등 혐의로 구속했다고 15일 밝혔다.

경찰 조사결과 이들은 경찰의 추적을 피하기 위해 다른 사람 명의의 휴대전화(일명 대포폰)를 사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은 모집책과 방문책 등으로 역할 분담을 철저히 하고, 총책과 모집책조차도 서로의 목소리만 알고 얼굴은 전혀 모르는 상태였다고 경찰은 전했다.

경찰 관계자는 "조직 자체가 워낙 점조직 형태로 운영되고, 아직까지 총책이 검거되지 않아 개인정보를 어디서 구했는지, 신분증은 어떻게 위조했는지 알 수 없지만 중국에서 유통·위조된 것으로 추정된다"며 "이들은 피해금액의 10%를 받기로 하고 범행에 가담했다"고 말했다.

한편 경찰은 총책과 중간 송금책 등 달아난 공범들의 뒤를 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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