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은 기자) 카카오맵이나 네이버지도에서는 버스 동선을 정밀하게 확인할 수 있다. 위성항법 시스템을 적용해 실시간 버스 위치를 지도 위에 나타내는데, 신호 대기 상태나 도로 정체 상황까지 고려해 버스 위치를 초 단위로 갱신한다. IT 기술이 분초 단위로 돌아가면서 사람들도 자신의 24시간을 분초 단위로 활용하기 시작했다. 시간 효율성을 극도로 높이려는 사회 분위기 속에 직장인의 생활 흐름도 분초 단위로 쪼개지고 있다.

비즈니스 일정 조율 서비스 '되는시간'
비즈니스 일정 조율 서비스 '되는시간'

분초 단위로 쪼개지는 시간

단위는 인간의 사고 방식에 영향을 미친다. 우리가 사용하는 시간 단위가 조각난다는 것은 시간을 그만큼 조밀하고 중요하게 사용한다는 뜻이다. 산업혁명 이후 자동차와 철도가 등장해 이동 속도가 빨라지고 시계가 발명돼 시간 개념이 정확해지면서 사람들은 분초 단위로 시간을 셀 수 있게 됐다.

흔히 ‘월급'으로 부르던 급여도 ‘시급’ 단위로 더 자주 표현한다. 시급 개념은 자연스럽게 "시간은 곧 돈"이라는 인식을 갖게 하고 특별히 바쁜 일이 없어도 시간을 절약해야 한다는 강박에 쫓기게 만든다.

시간 단위가 세밀하게 나누어진 사회에서 직장인들은 업무 시간을 조각내 철저하게 모듈화해 관리한다. 최근에는 반차를 넘어 '반반차', '반반반차'를 도입하거나, 도입을 검토하는 기업들까지 생기고 있다. 보통 하루 종일이나 또는 연차를 반으로 나눈 반차를 아예 시간 단위로 쪼개 쓸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근무 시간에 은행 업무를 처리하거나 병원을 다녀오는 등 자신의 필요에 따라 휴무를 유연하게 사용한다. 나아가 ‘짬PT', ‘틈새PT', '세미PT'처럼 점심시간을 쪼개 30분에서 50분 정도 운동하는 데에 PT 프로그램을 활용하기도 한다. 촘촘한 모듈로 구성해 시간의 효율을 높이는 것이다.

서로서로 시간이 아끼다 보니 약속 시간을 잡는 것도 어려워졌다. 모임 때마다 스마트폰을 꺼내 들고 언제 다시 만날지 날짜를 약속하는 모습도 흔히 볼 수 있다. 이에 맞춰 여러 사람의 일정을 조율해 주는 서비스도 등장했다. 비즈니스 일정 조율 서비스 ‘되는시간'은 개인간 미팅 일정을 조율하는 무료 서비스부터 예약 페이지와 캘린더 연결을 무제한으로 할 수 있는 기업용 프리미엄 서비스까지 다양한 기능을 제공한다. 출시 2년 만에 기업 고객 1,400개 사와 개인 고객 2만 2,000명을 넘어설 만큼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출퇴근하는 직장인들
출퇴근하는 직장인들

연봉 보다 ‘직주근접’ 선호

요즘 젊은 세대 직장인은 취업 할 때 ‘직주 근접'을 매우 중요한 조건으로 고려한다. 예전에는 내 집을 갖는 것이 먼저라 집값이 싼 교외에 집을 구입하고 1시간이 걸려도 출퇴근 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지금은 임대를 해서라도 거주지와 직장 사이의 거리를 줄여 출퇴근 시간을 아끼려는 사람들의 선택이 많아지고 있다. 직장을 알아볼 때 급여나 기업 평판, 성장 가능성과 더불어 '회사의 위치'를 우선시하는 구직자가 증가하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으로 풀이된다.

엔데믹을 맞이하고서도 여전히 쟁점으로 남은 재택근무와 유연근무제의 지속 여부도 사람들의 시간 개념이 변한 것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팬데믹 때 도입된 재택근무는 많은 직장인에게 출퇴근 시간과 직장의 무의미한 회의, 회식 시간을 줄일 수 있다는 것을 일깨워 주었다. 

단순한 시간 절약 차원이 아니라 자신이 주체적으로 일상생활의 흐름을 결정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지한 것이다. 이제 조직이 정해주는 시간표가 아니라 스스로가 적극적으로 자기 시간을 확보하고 관리하는 시간의 초개인화 사회가 도래했다. 자기에게 맞는 서로 다른 시간표에 맞춰 일하고, 먹고, 생활하는 개인이 늘어나는 중이다.

'반자율주행'을 할 수 있는 첨단 운전자보조시스템(ADAS)
'반자율주행'을 할 수 있는 첨단 운전자보조시스템(ADAS)

멀티태스킹으로 시간 사용의 밀도 높이기

시간의 초개인화 사회가 단순히 시간의 양적 흐름만 단축시킨 것은 아니다. 사람들은 시간의 질도 중요하게 인식하며, 시간 사용의 밀도를 높이려고 애쓴다. 시간의 단위를 쪼개면, 숨겨져 있던 사각지대를 되찾을 수 있게 된다. 시간 사용의 틈새를 확보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한 통에 큰 돌을 먼저 넣고 다음에 작은 자갈, 그리고 모래 순서로 채울 때, 모래가 돌과 자갈 사이의 빈틈에 들어가 통을 촘촘히 채우는 것과 같은 원리다. 큰 시간과 작은 시간이 공존하는 현상은 자연스럽게 여러 일을 동시에 처리하는 '시간의 저글링'으로 이어진다.

미국에서는 '반자율주행'을 할 수 있는 첨단 운전자보조시스템(ADAS)이 자동차에 적용된 후 운전자가 운행 중에 식사하거나 화장하기, 게임을 하거나 문자메시지 보내기, 깜빡 졸기 등 '딴짓'을 해 문제가 되고 있다. 미국 고속도로 안전보험협회는 캐딜락 ‘슈퍼크루즈' 운전자의 53%, 테슬라 ‘오토파일럿' 운전자의 42%가 반자율주행 모드를 오용하고 있다고 밝혔다.

운전자들은 반자율주행 모드로 운행 중 '딴짓'을 해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반자율주행 자동차는 핸들에서 손을 떼면 경고가 뜨고 주행 모드가 해제되지만 사람들은 운전대에 손을 대고 있는 것처럼 센서를 속이는 보조 기구까지 사용해 가며 ‘딴짓’을 한다.

갤럭시 Z 폴드5 '멀티 윈도우' 기능
갤럭시 Z 폴드5 '멀티 윈도우' 기능

한 화면에 여러 개의 창을 띄울 수 있는 스마트폰 갤럭시 Z 폴드5. 동영상 재생, 쇼핑, 검색, 게임 등 다양한 작업을 동시에 할 수 있다.

자칫 생명을 잃을 수도 있는 자동차 운전에서 딴짓을 할 정도라면 다른 상황은 말할 것도 없다. 대표적인 것이 듣는 책, 오디오북이다. 오디오북은 대체로 운전이나 집안일 등 다른 일을 하면서도 들을 수 있는 매체라서 멀티태스킹이 늘어나고 있는 정도를 가늠할 수 있는 간접 지표다.

모바일 환경에서도 여러 개의 탭을 열어 놓고 동시에 여러 작업을 하는 것이 자연스러워졌다. 스마트폰들도 이러한 멀티태스킹을 쉽게 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삼성전자의 갤럭시 Z 폴드5는 한 화면에 최대 3개의 창을 한 번에 띄울 수 있는 '멀티 윈도우' 기능을 지원한다.

사용자는 여러 대의 모니터 앞에서 일하는 것처럼 2개의 브라우저를 보면서 동시에 이메일 작업 등을 할 수 있다. 또 PC와 같이 멀티태스킹을 지원하는 ‘태스크바' 기능은 최근 사용한 앱 4개를 포함해 최대 12개의 앱을 화면 하단 바에 저장할 수 있어, 사용자는 하던 작업을 중단하지 않고도 앱 사이에 전환과 관리, 실행을 할 수 있다.

저작권자 © 시사통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