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 기자) 지난 가을 해외 유학을 준비 하던 20대 남학생의 한 인터뷰가 화제가 됐다. 그는 국내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자신의 전공 분야에서 세계 순위 1위인 대학원 진학을 이미 결정했지만, 입학하지 않을 다른 유명 대학원에도 추가 비용을 들여 입학원서를 내고 합격증을 받아 이를 소셜미디에 게재했다. 남들에게 자신의 실력을 제대로 증명하고 싶다는 이유에서였다.. 매일 소셜미디어에 업로드하는 소식이 자신의 성취를 남들에게 공유하고 평가받는 하나의 개인 포트폴리오가 된 것이다.

과거 부모 세대와 비교하면 지금의 청년들은 훨씬 풍요로운 경제적 환경 속에서 성장했다. 자신의 자존감을 소중하게 여기는 교육도 충분히 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완벽함에 한 가지라도 모자라면 힘들어한다. 이유는 무엇일까?

영화 '위대한 개츠비'
영화 '위대한 개츠비'

무너진 ‘계층 이동 사다리’, 타고난 육각형인간 선망 강해져

먼저, 엄격한 기준을 마련해 아무나 쉽게 육각형인간이 되지 못하도록 '담을 쌓는' 특성은 우리 사회의 '계층 이동 사다리'가 약해진 것과 연관 있다. 그동안 한국 사회는 모든 성패를 개인의 노력으로 돌리는 개인주의와 능력주의를 바탕으로 성장했다. 2008년 세계 금융 위기,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을 겪는 동안 부의 양극화가 심해지면서 견고하던 노력 신화가 무너졌다. 요즘은 개인의 노력으로 성공할 수 있다는 믿음이 갈수록 흔들리고 있다.

근래 우리나라 2030세대는 성공을 ‘타고난 자산’ 덕으로 돌리는 경향이 강하다. 신분의 상향 이동이 어려워지면서 노력의 가치가 옅어지고 있는 것이다. 노력 신화가 사라진 자리에는 집안, 외모, 재능처럼 타고나야 가질 수 있는 것, 누구나 쉽게 가지지 못하는 것이 채워지고 있다.

우리 사회에서 노력 신화가 무너지고 있는 것은 요즘 부자가 노력만으로 닿을 수 있는 수준을 넘어 소위 '넘사벽'의 부를 쌓은 경우가 많아지는 것도 영향을 미쳤다. 뛰어난 기술이나 플랫폼 하나로 세계 시장을 독점하는 '테크 거부'들은 부자가 되는 속도나 부의 규모가 가히 천문학적이다. 평범한 사람들은 노력은 커녕 상상하기조차 어렵다. 이러한 상황이 지속되면 나의 노력은 보잘 것 없이 느껴질 수 있다.

타인과의 비교
타인과의 비교

SNS에서 더 많은 기준과 더 많은 타인과 수시로 비교

둘째, 비교하며 서로 '등급'을 매기고, 나의 가치를 '숫자'로 증명하는 현상은 소셜미디어의 발달과 관련 깊다. 소셜미디어의 등장은 타인과의 비교를 한층 더 쉽게 하고 나아가 비교를 일상화시켰다. 

미국의 사회심리학자 레온 페스팅거가 주장한 ‘사회 비교 이론’에 따르면, 사람은 타인과의 비교를 통해 스스로의 가치를 평가한다. 소셜미디어는 이런 비교를 극대화한다. 밝고 예쁘게 과장되어 업로드 한 남들의 소셜미디어 피드를 분 단위, 초 단위로 확인하며 끝없이 나와 타인을 비교한다. 

비교 대상도 확장됐다. 과거에는 친구와 이웃 사이에서 이뤄지던 비교가 이제는 나와 일면식도 없는 유명 인플루언서로 확대된다. 타인의 삶을 엿보며 자신이 꿈꾸는 욕망의 크기는 점점 더 커진다. 더 많은 기준으로, 더 많은 타인과 비교하면서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서로에게 점수를 매기며 등급을 나눈다.

사라진 계층 이동 사다리
사라진 계층 이동 사다리

실제와 이상 사이의 괴리를 줄이려는 ‘육각형 놀이’

마지막으로 자아와 현실을 과장하며 '육각형놀이'에 몰두하는 이유는 내면에 존재하는 다양한 '나'의 충돌을 막는 일종의 방어기제로 작용한다. 

심리학자이자 미국 컬럼비아대 교수인 에드워드 토리 히긴스는 1987년 제안한 ‘자기 불일치 이론’에서 사람이 인식하는 자기개념을 세 가지로 분류했다. 내가 가지고 있다고 인식하는 ‘실제적 자기(actual self)’, 개인이 소유하기를 희망하는 ‘이상적 자기(ideal self)’, 그리고 반드시 가져야 할 책임이 있는 ‘의무적 자기(ought self)’다. 

자기 불일치 이론에 따르면, 인간은 이러한 자기개념 사이에 격차가 없을 때 조화로운 상태에 이른다. 반대로 자기 인식 사이에 괴리가 생기면 부정적 심리 상황을 경험한다. 가령 실제적 자기와 이상적 자기가 불일치할 때, 실망, 불만족, 슬픔 같은 정서에 취약해진다. 실제적 자기와 의무적 자기가 불일치할 때는 두려움, 긴장감 같은 정서에 취약하다.

비싼 가방, 비싼 식사 같이 행복한 순간을 소셜미디어에서 과시하는 행동은 남들에게 부러움을 사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스스로 인정할 수 있는 '멀티 페르소나'를 만들어내는 일이기도 하다. 삶의 모든 순간이 SNS 속 사진처럼 행복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실제적 자기와 이상적 자기 사이에 격차가 생기는 순간, 불편한 마음을 해소하기 위해 사람들은 현실을 놀이화하며 이 차이를 줄여가는 것이다.

영국 런던정경대학(LSE)의 심리학자 토머스 커런 박사팀은 미국, 영국, 캐나다의 4만여 명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특히 젊은이들 사이에서 남들에게 완벽함을 보여줘야 인정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고 타인을 이겨야 한다는 압박감을 느끼는 '사회적 완벽주의'가 일반화되고 있다고 밝혔다.

연구자들은 "젊은 세대가 자신이 처한 사회적 상황을 점점 더 부담스럽게 받아들이고 있으며, 타인이 자신을 더 가혹하게 평가하기 때문에 더욱 완벽한 모습을 보여줘야만 인정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풀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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